"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15~16)
우리는 누군가에게 배워야 합니다.
배움을 주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스승에게 지식뿐만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배움으로써 풍성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스승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스승의 길이 아닌 아버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자신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고 있습니다.
흔한 스승이 되지 말고, 귀한 아버지가 되라는 것입니다.
스승과 아버지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스승은 낳지 않습니다.
스승은 맡아서 가르칩니다.
스승의 관계는 깨질 수 있습니다.
서로 맞지 않으면 각자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피붙이로 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써 너희을 낳았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자신의 영적인 피붙이로 보았습니다.
영적으로 낳은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포기할 수 없는 영적인 자녀로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의 장래와 행복을 위하듯 복음안에서 본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서신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의 서신서는 스승으로써의 책망이나, 가르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때로 냉철한 지식이나 매서운 가르침보다 따뜻한 마음이 사람을 변화시킬 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자세로 성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목회자들이 성도를 제자로만 생각합니다.
스승의 입장에서 가르치고, 책망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스승된 목회자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목회는 아버지의 목회였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삶을 나누고, 함께 이야기하며, 최선으로 가르치는 목회자였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가요?
지금 당신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요?
많은 세미나에 다니고, 행사에 다니는 것은 누구를 위함인가요?
아버지와 함께 삶을 나누지 못하는 자녀들은 세상에가 가장 불행한 자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맡긴 자녀들을 바라보세요.
김형석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