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도행전 11:19~21)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 많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핍박을 피해서 멀리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도 참 많이 떨어진 변방 지역이었습니다. 신앙의 핍박을 피해서 생명을 지키고자 안디옥까지 피난을 떠난 사람들은 두 가지의 행동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1. 익숙함이 아닌 낮설음으로
당시 복음은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아는 선지식을 가진 유대민족들에게만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안디옥으로 흩어진 제자들은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익숙했던 지식과 태도를 내려놓고 낮설은 방식과 대상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낮설은 대상에게 예수를 전할 때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익숙함은 나의 방법과 나의 힘을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이 개입하실 여지를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낮설음은 오히려 나의 방법을 내려놓고, 주의 손의 함께하는 능력을 간구하게 합니다.
놀라운 능력의 비결은 익숙함이 아니라 주의 손을 의지하는 낮설음이었던 것입니다.
가끔 익숙함에 안주하는 성도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또 목회자들을 보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익숙함에 젖어 말씀과 기도가 간절해지지 않는 영적 나른함에 빠져 있지 않는지 반성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익숙함에 익숙해지기 보다는, 낮설음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의 손의 능력에 익숙해지시길 축원합니다.
2. 변방에서 중심으로
당시 핍박을 피해 달아난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스데반처럼 순교하지 못하고, 핍박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신앙의 낮은 자존감과 자괴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패배자, 배신자, 낙오자라는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풀죽은 상태에서 타의에 의해서 변방으로 도망가 피신해 있는 자신의 삶을 얼마나 스스로 비관하고 있었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셨고,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불리우는 놀라운 신앙적 완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탁월한 능력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처럼 신앙의 핍박에 숨 죽이고 몸 사렸던 연약한 사람들을 통해서 놀라운 복음의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안디옥은 변방이었지만, 이방선교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고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사역을 이야기 할 때 안디옥을 논하지 않고서는 진행이 되지 않는 핵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과 변방의 지역을 통해 사도행전의 놀라운 선교사역을 이루신 것입니다.
연약한 사람, 불리안 조건, 변방의 초라함은 하나님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사람들은 좋은 것이 모여 선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위해 약한 것, 좋지 않은 것, 악한 것 등 모든 것을 사용하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장소, 사역은 지금은 변방일지라도 반드시 시대의 중심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모든 연약함의 굴레에서 벗어나 낮설음의 축복을 이루시고 변방에서 중심으로 성장하는 귀한 삶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형석 목사 드림.